그 동막골 사람들의 강원도 사투리와, 순수한 표정들..대화들.. 그냥 폭 빠져있게 되드래여~
지친 우리에게 선물같은 영화랍니다 "영화는 꼭 보시드래여~알았드래여?"
알았드래여~~~~~~~~ 뭔 영화간디 이리 맛나게 권할까잉? 그녀, 바스레기가 지평에 올린 영화 소개글이 하도 잡아끌길게 설레며 극장으로 향했다. 흥행 성공은 성공인가보다, 한 영화관 두군데서 동시에 상영을 하다니.
영화의 장면 장면들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재미와 감동과 영상미... 따뜻하고 깊은 메시지... 기승전결에 충실하면서도 맛갈스런 반전이 적절히 배치된 영화다. 흠뻑 빠져들었다기 보다는 한발짝 떨어진 거리에서 난 나만의 감상에 젖어들던 행복한 시간이었다.
온 세상이 거스를 수 없는 광기에 휘말려 피비린내와 비명소리와 포연만이 자욱하던 시절에도 마치 무릉도원처럼 오롯이 복사꽃 피워내던 마을이 있었다니... '동막골'이라는 설정자체부터가 이 영화의 매력이자 키워드다. 동막골을 배경으로 한, 동화같기도 하고 수채화 같기도 한 영상들이 주인공들의 맛갈진 대사 속에 녹아들어 아슴히 되살아난다.
"뭔 사람이 아는 체를 그리 해요? 낯짝에 짝대기는 들이대고…"
도대체 산아래 세상은 지금 난리통굴인지 어떤지 아예 모른 채, 평화로이 벌을 치고 감자 농사를 짓고 사는 별종같은 동막골 사람들 앞에서 금속성 총기는 그저 짝대기 수준으로 무력화 되고 마는데,,, 격전지이던 태백산맥 줄기 어디쯤서 서로 쫒기고 쫒기다 먹을거리 찾아 벼랑 아래 깊은 산속 마을로 들어서게 된 인민군들과 국군 탈영병들... 그들 앞에 고향처럼 펼쳐진 동막골은 그야말로 인간 본연의 순수함과 평화를 지향하는 인간성을 회복해 다시 태어나게 해주는 근원적 자궁의 역할을 한다. 머리에 꽃을 꽂고 내내 감동을 리드해가는 광녀 여일(강혜정 분). 영화속 군인들을, 영화 밖 관객들을 무장해제 시키곤 하던 그녀의 존재는 아마도,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고 살육의 광기에 내몰린 존재들이야말로 미친 것 아니냐, 전쟁상황이야말로 미친 짓거리 아니냐, 미친 건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다, 의 은유가 아닐까?
" 근데 있자너, 쟈들하고 친구나?"
순식간에 동막골을 긴장으로 몰아넣으며 서로 총부리를 겨눈 국군과 인민군들 앞에 나타난 여일의 한마디는 두 적대세력의 돌덩이 같은 가슴에 순간적으로 아주 미세한 균열을 일으킨다.
그 틈으로 차츰차츰 맑은 눈물이 스며들어가고 서로간의 증오감도 스스로 녹아져, 마침내 남과 북의 젊은이들은 하나가 되어 거대한 또 다른 적 앞에 맞서게 되는 것이다.
"야아~ 눈이다야~"
팝콘이 함박눈처럼 쏟아져 내리던 장면에서 여울이 황홀해하며 외치는 대사다. 인민군 위생명 손에 쥐어있던 수류탄이 광녀 여일의, 위험도 죽음의 공포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행동으로 인해 슬쩍 핀이 뽑히고 결국 대치에 지친 인민군 소년은 졸다가 수류탄을 놓쳐버리고 만다. 인간 내면의 숭고함을 보여주기 위한 뻔한 전개이지만, 한강다리 폭파 이후 괴로워하다 국군을 탈영한 표소위(신하균 분)는 이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에서 적이던 인민군 병사를 밀쳐내며 순간적으로 몸을 날려 수류탄을 덮는다. 수류탄이 안 터지자 화가나 "뭐 이런게 다 있어" 하며 곳간으로 집어날려버리자, 펑~~! 하늘에선 때아닌 목련꽃송이들이 너울대며 사람들 콧등위로 가슴위로 살포시 내려앉는다. 큰 화면 한가운데서 옥수수 알갱이가 파박 터지는데 햐, 영락없는 목련꽃송이 아니던가...... 이 영화 영상미의 진수다. 겨울을 날 곡식을 넣어둔 곳간이 불길에 날라갔어도 동막골 사람들은 하늘하늘 무수히 내리는 팝콘을 보며 어린아이 처럼 행복해하는 표정들이다. 이 장면에서는 내 가슴에도 파바팍 팝콘이 튀겨지며 환희가 분출하던 기억...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연극 연출을 하던 장진 감독이 쓴 것으로 몇 년 전에 연극으로도 무대에 올려진 작품이라고 한다. 음악또한 일본 에니메이션 영화음악의 거장인 히사이조가 만들었다해서 이 영화가 더 유명해지기도 했다. 그래, 이제 이만큼 왔구나... 그동안 냉전시대와 분단현실을 다뤘던 한국 영화는 쉬리, 실미도, ... 공동경비구역을 거쳐 장진과 박광현 감독(필름 있수다- 필름 it suda 대표)의 이 영화에 의해 확 지평이 넓혀졌다는 생각이다. 냉전의 아픔을 드러내고( -쉬리, 실미도) 민족동질성을 확인하며 화해와 평화를 모색하던(-공동경비구역, 간 큰 가족) 단계에서 이젠 새로 만들어가야만 할 세상에 대한 대안제시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데..."
비행기 추락 사고로 부상해 동막골에 머물게 된 연합군 병사 스미스의 말마따나 동막골은 모든 인간들이 그의 내면에 아련한 향수를 머금고 있는 *오래된 미래로서의 이상향이기도 하다. 무한경쟁과 이데올로기와 그 모든 편가름에 의해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현대 세계가 힘겹게 도달해야 할 목표이자, 아울러 그 모든 대립과 갈등과 싸움을 이겨낼 무기이기도 한, 하나의 상징으로서의 동막골!
영화 속 시점은 과거 한국 전쟁을 다루고 있지만 영화에 담겨진 메시지는 과거가 아닌, 지금 여기서부터 이룩해갈 미래가 되고, 한국이 아닌, 세계적인 무대로 메지지를 확장해내고 있다. 하루하루 흙과 더불어 건강한 노동으로 욕심없이 사는 동막골 사람들. 급할 것 없고 화낼 줄 모르는 그들 사이엔 미움이나 오해나 갈등이 거의 없다. 분노할 줄 모르고 증오를 모르는 별종들이다. 하여 동막골 사람들이 내겐 비현실적으로 와닿기도 한다. 한두 사람 빼고는 하나같이 등장인물들의 표정도 무위자연을 노래하던 노자의 후예쯤 될법한데다가 화면 속 배경또한 동화적이다. 마치 헬레나의 유명한 책 <오래된 미래>에 나오는 라다크인들을 만난 듯하였다. 그런 삶의 모습이 가장 인간적이고 정상적이고 아름다운 것이건만 그게 오히려 낯설고 어색하게 여겨질만큼 내 마음은 일그러지고 때가 낀 것일까...
허나, 사랑으로 증오를 이겨내고 평화로서 폭력과 전쟁을 이겨내게 하는 휴머니즘적 메시지... 여기까지만 보면 이 영화의 한 면만 본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필연적인 전개과정이기에 잘 드러나진 않지만 영화 후반부 마지막 줄거리와 장면은 아주 은유적으로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본다. 연합군의 무자비한 공격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동막골을 지켜내기 위해 한마음으로 모아진 남과 북 군인들과 연합군 소속의 스미스...
"우리도 또하나의 연합군이네요"
여일에게 풋사랑을 느끼던 인민군 소년병사의 대사, ... 길게 가슴을 쳐온다. 도중에서 스미스를 연합군 본부로 보내고 국군 둘에 인민군 셋, 이렇게 다섯명만 남겨진 눈덮인 진지... 이어 이어지는 전투 장면은 영화 전반부에서의 인간의 잔혹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피를 가진 인간 대 인간의 싸움이 아니다. 피를 가진 인간 대, 피도 눈물도 없는, 막강한 자본의 힘으로 무장한 금속성 전투기들과 비오듯 쏟아져 내리는 폭탄들과의 싸움이다. 세계지도를 펴면 동북아시아 한 귀퉁이 새끼 손톱만한 땅덩어리인 한반도. 그러고도 한점으로도 채 표시조차 안 될 강원도 산속 한귀퉁이에서 남북한 젊은이 다섯명이 연합군이라 불리던 거대한 군대에 맞서 쨉도 안되는 싸움을 벌이며 저항을 하는 것이다. 이 장면이야말로, 제국주의 강대국에 의해 포위된 채 아직 분단 상황이 종결된 것이 아닌 한반도... 그 끝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머지않아 닥쳐올지도 모를 미래에 대한 장진과 박광훈 감독의 속내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무수한 폭탄들이 하늘을 찢으며 쏟아져 내릴 때, 주인공들의 비장한 패배는 숙명이다. 그러나,,, 마침내 동막골은 지켜졌다. 목숨 걸며 지켜내고자 싸운 민족의 젊은이들에 의해....... 온통 불길 치솟는 진지에서 마지막으로 서로 눈빛 나누곤 웃으며 장렬히 산화해간 그들... 그래픽 효과이긴 하지만 영화 중 비장미와 숭고미의 극치이다.
서로 아끼고 존중하는 인간다운 생활이 있고, 평화가 돋아나는, 인류의 유토피아로서의 진지인 동막골... 끝내 믿어야 할 것은 인간내면의 선함과 평화를 지향하는 심성이겠지만 인간의 폭력성과 야만성은 인간자체의 문제만은 아니다라는 것이 이 영화 코드 읽기의 또 다른 매력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기에 화해와 상생과 평화로 향해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미움없는 분노를 품은 저항의 꽃잎들이 뚝뚝 떨어져야만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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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명 특정 주인공에 승부걸지 않는 영화... 주인공들의 연기가 다 좋았지만 인민군 장교 리수화로 나오는 정재영의 표정 연기는 특히나 가슴을 잡아당긴다. 인생의 희노애락을, 쓸쓸함을, 숱하게 견뎌낸 자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이다. 모든 생명에 대한, 인간에 대한, 그 연민과 사랑을 눈빛 가득 뿜어내던... ( 그 인민군 장교 참말로 멋지드래여~~ ㅋ)
" 뱜~~이나와, 그리고 아 봤나??, 손이 빨라지미, 다리도 빨라지미, 다리가 빨라지미, 손은 더 빨라지미, 내그래서 하나도 아니 힘들어, "
(뱀 나오는 계곡의 패잔명 인민군들 앞에 여일이 뿅~ 나타나 내뱉는 이 대사는 말투며 목소리가 넘 이뻤징.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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