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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신경숙 소설, <J이야기> 중‘냉장고 문을 여는 여자’ 사랑,아직 끝나지 않았다-sbs 라디오

인생직진 2008. 8. 25. 22:00


옛날 같진 않지만, 세월이란,
더구나 여자에게 7년의 세월이란
나 정도의 변화는 상식적인 것 아니겠어.
갑자기 마음의 여유가 생기더라구.
나는 전화를 끊고, 연둣빛 원피스를 하나 사 입었어.
그 남자가 연두색을 몹시 좋아한다는 걸 생각해냈거든.
약속 장소에 나갔는데 남자 혼자 앉아 있는 테이블이
없었어. 내가 20분 늦긴 했어.
거울 보고 화장 고치고 하느라고 말야.
나는 커피숍 홀을 두 번이나 돌았지.
그런데도 그는 없었어.
이상하다 하고 막 고개를 돌리려는데
저편에서 어떤 뚱뚱한 여자하고 고개를 맞대고
주스를 마시고 있던 남자가 나를 부르는 거야.



"여기에요, 여기!"
가까이 다가가 보니 세상에 J야, 바로 그 남자였어.
머리는 대머리가 되었고, 툭 튀어나온 배는 태산이고,
코밑까지 살이 쪄서 얼굴이 뭉개져 있으니
내가 어떻게 그를 알아보겠니.
거기다가 그는 나는 아랑곳없이 옆에 앉아 있던
뚱뚱한 여자에게 나를 인사시키더니
대뜸 한다는 소리 좀 들어봐.



"옛정을 생각해서 해명 좀 해주세요.
내가 지난 7년 동안 윤희씰 단 한번이라도
만난 적이 있습니까? 예?
옛이야기로 다 묻어두고 한 결혼인데, 이제 와서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내가 윤희씨한테
왔다갔다한다는 거예요.
이렇게 직접 확인을 해야겠다니 어쩌겠어요?
사실대로 대답 좀 해주세요.
근데 윤희씨 많이 변했네요?
왜 이렇게 뚱뚱해졌어요?"



나 원 참, 기가 막혀서.
함께 살면 제 집사람 살찐 건 보이지도 않나보지?
아이구 또 저는 어떻고.
초여름이고 연둣빛이고 뭐고 다 기가 막히더라고.
그 커피숍 나오자마자, 집으로 달려와서
냉장고 문을 확 열어 제꼈지. 온갖 음식들을 죄다
식탁에 내놓고 나서야 새로 산 원피스를 난폭하게 벗었어.
편하게 앉아서 먹어 치우려고.


-신경숙 소설, 중에서,
‘냉장고 문을 여는 여자’ -

가끔 떠오르는 추억이 있습니다.
한때 뜨겁게 사랑하고 죽을만큼 사랑했던 그때의 추억이
문득 떠오를때가 있죠.
비록 그때는 상처가 됐던 시간이라고 해도
시간이 흐른뒤, 상처도 추억이 되더군요.
그러니 그 추억을 비참하게 만들지는 말아주세요.
그것이 한때나마 사랑했던 사람끼리 지켜야할
마지막 약속입니다.

 

-sbs <아름다운이아침> 사랑, 아직 끝났지 않았다 중에서 -


출처 : 멋대로씨의나무공방
글쓴이 : 아침풍경-카페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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